16.08.31. 청+흑도 용사AU
주의 : 아오미네 죽었음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한참 자리를 비껴도 사츠키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벽을 바라보며 누워서 세상을 등진 채였다. 축제가 시작된 지 일주일째였고 테츠야는 슬슬 억지로라도 식사를 하루에 두 번 이상 시켜야할지 고민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사츠키 본인도 뭔가 먹어야겠다 생각해 일어났다가도 8분도 지나지 않아 더 못 먹겠다며 고개를 숙이는 판에, 억지로 권한다고 그게 정말로 그녀의 뱃속으로 들어가 무사히 양분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8분 중 반은 더 먹지도 그만두지도 못하고 숟가락을 든 채 테츠야가 내온 식사를 가만 바라보다 지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내일이 바로 8월 31일이고 축제는 곧 끝날 것이다. 유례없는 대재앙을 인류가 또 한 번 극복해낸 데에 대한 축하가 그 주역인 용사의 생일에 극에 달할 거야 불 보듯 빤했다.
아오미네가 재앙을 물리치고 세계를 구한 것은 사실은 몇 달 전의 일이다.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환호하고 미처 못다 한 말을 전하려 달려가던 며칠이 지난 후에는 다시 당장 살아갈 일들이 급급했던 탓에 이 8월까지 축하가 미뤄졌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 조금 살만해졌다는 뜻이고, 당시 파괴되었던 건물과 경작지 등의 가장 급한 보수가 끝났다는 의미이며, 다시 한 번 은인에게 감사할 마음의 여유가 사람들에게 돌아왔다는 증거다. 테츠야는 이 흐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회복은 역설적이게도 사츠키를 좀 먹고 있다. 그녀 또한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쁨을 이해는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밖에서 용사의 전기를 미화해 수없이 재생산하며 기뻐하는 군중들과 함께하기에 그들 쿠로코 부부에게는 너무나 큰 차이점이 있었다. 아오미네 다이키는 용사이기 이전에 그들의 절친한 친우였다. 쿠로코 테츠야와 쿠로코 사츠키의 차이점이, 초여름 성이 바뀐 새신부가 세상에 등을 돌린 채 용사를 애도하게 하였다. 그녀에게 다이쨩은 평생을 함께 한 소꿉친구였다. 같이 일어나고 같이 먹고 같이 놀고, 모모이 사츠키가 쿠로코 사츠키가 될 때에 당연히 얼떨떨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먼저 결혼을 했든 아니든 부케를 받아가는 게 당연한 그런 존재였다. 남동생에 가깝지만 엄연히 다른 부부의 자식이므로 오히려 더 각별했다. 그 아오미네가 왼쪽 신발 속에만 조금 남고 사라져버렸는데 세상 사람들은 자기네가 살아남았다고 1주일씩 기뻐하고 있었다. 테츠야와 마찬가지로 사츠키 또한 이 모든 흐름을 이해 할 수 있었지만, 결코 납득은 할 수 없었다. 아오미네 다이키가 죽었는데 자신들은 살아남았다고 기뻐하고 있다니, 반대 아닌가? 대체 어떻게 벌써 축배를 들 수가 있지? 다이쨩이 죽었는데. 애도하고 비통해하고 감사하며 길이 기려도 모자랄 판에 세상은 새로운 용사를 기다리며 다음에도 또 그 목숨을 바쳐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용사라고 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자기 아이는 용사가 아니라고 안심하면서. 사츠키는 그 비겁함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소꿉친구가 이런 세상을 위해 죽은 것이 너무나 의미 없는 어리석은 짓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전부 함께 죽는 편이 나았다. 다이쨩만 죽고 없는데, 슬퍼하는 사람이 이것 밖에 없어. 물론, 정작 아오미네 본인이 안다면 뭐 그런 거 신경쓰냐 그 시간에 고기 먹자, 뭐 이런 속 편한 소리로 넘길 것이 빤하다. 그러나 그 아오미네 다이키는 없어져버렸으므로 사츠키를 위로해줄 본인이 없는 이상 아무 소용없는 가정이었다.
테츠야가 자신만큼 슬퍼하고 억울해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괜찮았다. 그가 아무리 아오미네의 좋은 이해자였다 한들 사츠키에 비할 바는 아닌 것이다. 아오미네 측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테츠야보다는 사츠키가 더 맘에 걸렸으니 결심을 굳히며 한다는 말이 너 테츠랑 결혼해야지, 였겠지. 하지만 그보다 눈에 밟히는 것은 그렇게 후련하게 웃어보이기 전의 그였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존재였던 용사가 중얼중얼 고민하던 광경을 사츠키는 똑똑히 기억했다. 정말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몇 놈 먼저 보내고 싶은데, 아아….”
“아오미네 군, 찾았습니다.”
“아 땡큐.”
성인이 된 용사에게 신전에서 내렸던 전설의 무구들이 몇 년 만에 겨우 골방에서 나와 빛을 본 순간이었다. 저게 바로…! 같은 감탄과 안도가 흘러나오는 주변과 정반대로 모모이는 신발을 갈아신는 아오미네를 그저 막막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아오미네가 처음으로 이 물건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기 이전에 도전자가 있어서 조금이라도 저 절망이 일으킬 수 있는 재앙들을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무엇으로도 죽지 않을 것 같던 용사가 전에 없이 긴장해 적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 어떤 마물도 코웃음 한 번 치고 한칼에 끝장을 내는 모습만을 십년이 넘게 보아온 그녀이기에 그 긴장감을 공유할 수 있었고, 그러나 공유한다고 해서 나뉘어 줄어드는 노릇은 아니라 일말의 도움조차 되지 않았다. 아오미네가 혀를 차고, 성큼성큼 걸어 자리를 옮겨가며 멀리를 바라보고, 초조하게 뒷목을 감싸 쥘 때마다 모모이의 불안은 증폭되었고, 하-아…하는 한숨이 흘러나왔을 때 그만 터져버렸다.
“다이쨩, 가지 말자…!”
“모모이 씨,”
아주 어린 아이를 어르는 말투로 자신을 붙드는 소꿉친구를 보고 용사는 아주 놀란 표정이었다. 위험하니까 가지 말자니, 그런 만류는 코흘리개 오줌싸개 시절에나 들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모모이가 용사에게 위험하니 나서지 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그녀 자신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며 쳐다본들 그녀는 붙잡은 손을 놓지도 방금 한 말을 취소하지도 않을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뭐라 말하든 울고 빌든 모모이는 아오미네가 죽도록 보내줄 수 없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이렇게 불안하고 겁먹은 그를 여태까지와 다름없이 혼자 싸우도록 할 수는 없다.
그런 말들을 모조리 쏟아내려는 찰나 아오미네는 그녀의 손등 위에 제 손을 턱 얹었다. 살짝 힘주어 떼어낸 손을 가장 믿는 친구에게 쥐여주었다.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굴로, 방금까지 그토록 신경이 곤두서있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는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아마도 이 때를 목격한 사람은 누구나 그가 세계를 구해낼 것이라고, 여신이 어둠에서 인간을 건지기 위해 내린 빛이라 깨달았을 것이다. 그 깨달음은 곧장 희망으로 바뀌었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쳤고, 5 살배기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그 희망의 빛이 모모이에겐 오로지 절망이었다. 너 테츠랑 결혼해야지. 장님도 벙어리도 귀머거리도 희망을 갖게 해주고 싶었는지, 그 한마디를 더 해 아오미네는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그는 저 절망을 없애 세계를 구할 것이고, 이 시도는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고, 그 후에 사츠키와 테츠가 결혼할 것이라는 장대하고도 하찮은 일련의 사건을 선언한 것과 같다. 그 뜻대로 이루어지리라고 그 자리의 모두가 알았다. 방금까지 그를 사로잡았던 두려움도 망설임도 하늘의 구름이 개듯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빛만이 남아, 명료한 의지만이 남아, 먼저 정찰대를 보낼 틈도 없이, 파트너에게조차 테츠 오지마, 걸리적댄다. 한 마디로 남겨두고 훌쩍 뛰어나서는 아오미네는 그 어느 때보다 세계를 구할 용사로 보였고
그래서 모모이는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용사를 절망을 물리치고 세계를 구했다.
그 시도는 틀림없이 성공했다.
그 여름 쿠로코 테츠야와 모모이 사츠키는 결혼했다.
아오미네의 묘 앞이었다.
반쯤 비었다고 해도 좋을 무덤이었다. 내용물이라곤 신전에서 용사에게 내어주었던 신발 한 짝과 그 안에 남은 아오미네의 일부분이 전부다. 그나마도 안전해졌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먼저 뛰쳐나간 모모이가 정말로 미친 사람처럼 아오미네를 찾다 발견해낸 부분이었다. 테츠야는 그때 자기가 또 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 무서워졌다고 고백했지만 사츠키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아오미네가 저 끔찍하고 두려운 것에 홀로 맞서 싸웠는데 그를 찾아내려하는 소꿉친구가 혹시라도 남아있을 마물을 걱정해서야 이상한 이야기다. 비록 아오미네가 모든 일을 마친 상태였지만 설령 남은 것이 있었더라도 그 때의 모모이는 정말로 용사의 소꿉친구답게 마물 대여섯 마리쯤이야 혼자 처리할 수 있었다. 그녀가 특별해서라기보다는, 아기를 물고가는 마물을 붙잡고 펀치를 먹여 쫓아낸 엄마나 절벽에서 떨어진 자식을 따라 뛰어내렸다가 다시 기어 올라오는 아빠들 얘기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훌륭한 능력이 가장 중요할 때는 전혀 나타나지 않아 아오미네가 혼자 죽게 둔 것이 사츠키는 원망스러웠다. 아오미네가 없는 모모이 사츠키의 결혼식이라니 상상조차 가지 않았지만 그 아오미네가 너 테츠랑 결혼해야지, 하고 웃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테츠야의 말마따나 그들이 결혼해야만 하기 때문에 세상이 구원 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세상과 아오미네 간의 빚 사이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나 아오미네의 그 말에 불복이 있어서는 안 될 노릇이었다. 하얀 드레스에 말간 햇빛을 받으며 사츠키는 테츠야와 나란히 서서 아오미네 다이키가 있어야 할 자리를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그 빈 곳에 그녀는 익숙해질 수 없었다. 8월이 다 끝나가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오미네 없는 수십 번의 가을을, 겨울을, 봄 그리고 또다시 여름, 그 수많은 날을 그녀는 앞으로 견뎌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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