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소 센티넬버스
한번 그 소질이 발현하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센티넬과 정 반대로 가이드는 자각증상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자질을 알아보는 것은 남일 수밖에 없는데, 가이드는 센티넬을 이끌 수 있다는 점 외에는 그 어떤 특별한 힘도 가지지 못했다. 만일 있다면, 그건 가이드로서가 아니라 그 개인으로서의 특별함이다. 따라서 가이드를 식별해낼 수 있는 사람은 개화한 센티넬로 제한된다. 자연히 가이드는 언제나 센티넬보다 적다.
몇 번의 불미스런 사건을 겪은 후 정부는 가이드의 확보에 좀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게 되었으며, 센티넬이 없는 학교에 정기적으로 한 명을 파견해 가장 센티넬의 발현이 잦은-가이드는 자신이 언제부터 가이드인지 알지 못하므로 부득이하게 그 짝이 되는 센티넬을 기준으로 삼는다-나잇대의 아이들을 살피게 하는 것도 그 정책의 일환이다. 선량한 시민의 친구, 코보리 코우지 경사가 한낮에 근무지를 벗어나 중학교 복도에 죽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센티넬이자 공직자이고, 자신의 직업에서 자연히 비롯하는 권위를 타고난 친화력으로 적절히 중화시킬 줄 안다는 점에서 이 일의 적임자였다. 물론 그렇다고 피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코보리는 방금 확인을 마친 반의 인솔교사에게 다음 반은 10분만 늦게 오게 해달라고 부탁한 후 재빨리 제복 주머니에서 귀마개를 꺼내 귓구멍을 틀어막고 양손으로 그 위를 덮었다. 혹시 가이드가 있다면 감각이 둔해지는 것이 표시가 되도록 오감을 일깨워둔 상태가 계속된 탓에 꽤 지쳐있었다. 층 전체, 그리고 위아래층 약간. 10여 개의 교실 속 소리가 전부 들려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못 된다. 하물며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들과 이를 통제하려는 교사, 대수학, 역사, 생물......음악실이 아래층이긴 해도 이쪽에 있는 줄 알았다면 절대로 여기에 자리를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층계참을 타고 울리는 피아노와 제멋대로인 노랫소리를 무시하려 애써 봤지만 가이드가 없는 지금 상황에선 어려운 일이었다. 코보리는 눈을 감고 느리게 호흡하며 임시로 불하받은 낡은 책상에 이마를 대었다. 그래도 너는 운이 좋아, 코우지. 근처에 가이드가 없어서 미쳐버릴 일은 없잖아?
7학년 애들은 남녀와 대소를 가리지 않고 대개가 고삐 풀린 망아지다. 일견 양순해 보이는 녀석이 다음 순간 감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일도 드물지 않은 것이다. 앞반 수업에 들어가 있는 동료 교사가 카사마츠 선생님, 10분 있다 오시랍니다. 하고 소곤거렸을 때 카사마츠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 10분동안 과연 자기반 학생들은 어떻게 붙잡아둘 것인가였다. 셈이 빠른 녀석들은 이미 수업 종료 5분 전이 자기네가 출발할 때란 걸 알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쉬는 시간 5분 째에 이미 수류탄 파편처럼 흩어진 녀석들을 전원 소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카사마츠는 가볍게 한숨을 한 번 쉬고서 교과서를 덮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화장실 갔다 오고, 쉬는시간 종 치면 다들 교실로 돌아와라. 다른반들은 아직 수업중이니까 조용히하고. 10분 있다 검사 받으러 갈 거니까 종치면 꼭 들어와. 늦게오면 센티넬이 잡아간다, 이상."
말이 끝나기 무섭게 터져나오는 수다소리에 칠판을 두어 번 두드리자 겨우 조용해진다. 옆자리의 친구와 머리를 붙이고 소근소근 센티넬에 대해 얘기하는 아이들을 잠시 바라보다 눈두덩을 가볍게 눌렀다. 신체능력과 오감이 빼어난 센티넬과 그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가이드. 어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충분한 소재이고,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를 검사받기 직전의 7학년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해리포터를 읽은 열 살배기들이 부엉이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카사마츠는 학생들의 흥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14살이었다면 그 역시 들떴을 것이다. 하지만 카사마츠가 14살이었던 때는 10년도 더 전이고, 자신과 관계없는 센티넬이네 가이드네 하는 것보다는 어젯밤부터 과하게 깜빡이기 시작한 형광등을 고치는 일에 더 관심이 갔다. 맨 앞자리의 빨간머리 남학생과 별 일 없냐? 로 시작하는 잡담을 주고받던 중에 휴식시간 종이 울렸다. 학생들이 우르르 돌아오길 기다려 복도에 한 줄로 세우고 없는 사람 있는가 점호를 마치자 5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떠들지 말고, 한 줄로. 2층까지 간다?"
"네~"
카사마츠는 학생들을 데리고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가면서, 교무실 창문으로 힐끔 본 키가 큰 경찰을 떠올렸다. 혼자 온 것 같던데, 가이드는 나중에 합류했나? 그의 의문은 센티넬과 악수하는 순간 풀렸다. 수수한 얼굴에 약간의 피로가 그늘졌던 센티넬이 그야말로 온몸으로 반가워하며 말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가이드시네요?"
"오오~"
"조용."
"자자, 앉으세요. 이것 좀 써주시고. 학생들은...몇학년 몇반이니?"
"7-F요."
"그럼 너희가 7학년 마지막이지? 자, 다들 옆으로 손내밀어요. 옳지 잘하네."
코보리 코우지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때의 점잖은 태도는 피곤 탓이었던지 활기차게 중학생들을 필요 이상으로 어린아이 취급하는 센티넬을 잠시 쳐다보다 카사마츠는 책상에 놓인 종이 한 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약관까지 포함해서, 인터넷에서 회원가입할 때 흔히 보는 양식이라 연락처와 주소지를 적으며 그는 있지도 않은 ID의 중복여부 확인 방법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그동안 키가 껑충한 센티넬은 자기도 팔을 살짝 내밀고 경쾌하게 걸어 키득키득 웃고있는 학생들과 일일이 손바닥을 부딪쳤다.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주저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대신에
"안되지, 몸 버려. 끊는 게 좋아."
"아가씨는 본래 체온이 높은가? 감기 조심해요."
"13번지 사니? 그 집 고양이 털색이 특이해서."
등등 당사자들은 알아듣고 놀라는 말들을 맥락도 없이 툭툭 던졌다. 카사마츠는 끝, 아무도 없구나. 하고 검사를 마친 그가 학생들의 어떻게 아셨어요? 가이드는 어딨어요? 정말로 센티넬이에요? 등등 호기심으로 가득한 질문에 대답해주며 천천히 돌아오는 동안 재빨리 기입을 마쳤다. 아래로 갈 수록 흐트러지는 글씨에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코보리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의 개인정보가 가득 적힌 설문지를 세번 접어 제복의 가슴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선생님 반도 끝났습니다. 9학년까지 보고 가이드분들 모아서 간단한 정보 같은거 알려드리고 질문 받고 할 건데요. 학생들은 수업 끝나면 될 거고, 선생님은 언제..."
"저도 수업 다 끝난 후에 시간 됩니다."
"아,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카사마츠 선생님 맞으시죠?"
"네. 윤리 담당입니다."
"윤리의 카사마츠 선생님."
다시금 확인하는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자 코보리가 빙긋이 웃었다. 쑥 솟은 키와 경찰이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위압감이 전혀 없는 건 그 표정 덕인듯했다. 마치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옆집 현관문을 잠그고 있을법한 친근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자 센티넬은 9학년 여학생을 한 명 앞세우고 카사마츠를 찾아왔다. 그의 수업을 듣는 그 학생은 자신이 가이드라는 사실에 꽤 흥분해있었고, 카사마츠는 그녀에게 복도를 뒤로 걷지 말라고 주의를 시키려다 그만두었다. 코보리가 먼저 숙녀분, 그러다 자빠져요. 하고 손을 끌어당겨 그녀를 돌려세웠기 때문이다. 상담실에 도착하자 센티넬은 가이드 두 명과 마주 앉더니 멋쩍은 듯 씩 웃었다.
"이거, 가이드가 두 분이나 같이 있어서 그런가 되게 편한게 제 집 같네요. 저는 센티넬이지 가이드가 아니라서 아주 자세한 것까지는 설명 못드리지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안들을 알려드리고 간단한 질문 정도 받을 생각입니다.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신가요? 없군요."
그리곤 제 말대로 정말로 편안하고 익숙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가이드가 센티넬을 만나 인도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가이드 본인의 의사에 달렸다. 가이드는 센티넬 혹은 국가의 요청에 응할 의무가 없으며 아까 그들이 작성한 서류는 오로지 비상연락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만 사용된다. 가이드와의 적절한 접촉을 유지하지 못하는 센티넬을 위해 국가 기관에서 가이드에게 연락을 취할 때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봉사활동으로 취급되고, 수락하면 약간의 어드밴티지가 있지만 수락하지 않는다 해서 불이익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이는 센티넬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센티넬과 가이드는 어디까지나 평등한 개인과 개인이 상호 간의 이해와 동의를 거쳐 인간관계를 다져나가야하며 센티넬이 일방적으로 가이드의 의사를 무시하고 요구할 경우 이는 정도에 따라 협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딱딱한 이야기가 계속되어 경직된 공기를 의식한 듯 센티넬이 붙임성있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연인도 아닌데 센티넬이 억지로 뽀뽀하고 만지려하면 신고해도 된다는 뜻이에요. 지역번호 잊지 말고요. 센티넬을 찾으면 바로 나한테 연결 될 테니까."
Call 911. 하고 한 번 더 반복하는 목소리가 민중의 지팡이답게 믿음직했다.
"질문있나요?"
"센티넬이랑 가이드가 사귀기도 해요?"
"글쎄요, 학생의 취향을 모르니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내가 만일 9학년 가이드 소녀라면 매번 내가 달래고 얼러줘야 하는 남자를 좋아하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산간도서지방으로 가이드를 발령하는 추세라고 들었는데, 이것도 선택권이 있는 겁니까?"
"예. 그건 어디까지나 복지 차원이니까요."
"복지?"
톡 튀어 오른 소녀의 질문에 코보리는 잠깐 옆으로 눈을 피했다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키세 료타 아시죠? 몇 년 전 섬으로 촬영갔다가 폭주한 센티넬 모델 말입니다. 당시 일행과 섬 주민 중 가이드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성 후폭풍이 심하게 왔거든요. 실은 가이드가 한 명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비가 그칠 때까지 갇혀서......아마 그렇게 빨리 회복하지 못했을 거에요.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고 국가 차원에서 가이드를 파견하는 겁니다. 교사나 경찰이면 또 딱 관리가 쉬우니까.....그렇게 가면 세금 감면 혜택도 있대요. 덧붙인 말은 조금 자신없는 투인 것이 자세히는 모르는 눈치다. 카사마츠는 뺨을 긁적이고서 대답에 만족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그를 안심시켜 주었다. 선생님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끝난것 같자 학생이 또, 이번엔 꽤 핵심적인 질문은 던졌다.
"가이드는 어떻게 센티넬을 인도Guide 하는 거에요?"
"진정시킬 땐 스킨쉽이 가장 빠르고 쉽죠. 닫힌 감각을 다시 깨우거나 한쪽으로 집중시키는 건 센티넬과 꽤 친해야해요. 그건 전적으로 심리적인 문제니까요."
"그렇다면 일반인들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센티넬이 가이드도 아닌 일반인을 그렇게까지 믿고 따르기는 어려울 겁니다. 깊은 교감이 필요하거든요."
"경사님이랑 경사님 가이드는 어떻게 하는데요?"
"저는...조금 특수한 경우라."
영 머쓱한 표정으로 뒷목을 비빈 경사가 조심스럽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전 가이드 없이도 미치진 않거든요. 약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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