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End -4-
여보세요?
여보세요? Trick or t
끝났어 과자없어 돌아가
엌ㅋㅋㅋㅋㅋ단호하셔랔ㅋㅋㅋ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자, 펜을 들고! 굵은걸로! 기왕이면 매직으로?
...음.
다이쨩이 제일 자주 보는 달력을 11월로 넘기고!
응.
21일을 찾
생일이야?
......응.
오키도키 알았어, 빨간색으로 크게 표시해둘게. 시합날보다 크게!
앗 아니wwww그렇게까지 할 필요는wwwww으응 기대할게!
오냐. 잘 자.
응 다이쨩도 잘 자.
11월 하순, 공기가 완전히 건조해지고 본격적으로 기온이 떨어지는 이 시기에 슈토쿠 고등학교에 매년 여상스레 전해져오는 소식이 있다. 바로 윈터컵 진출이 그것이다. 도쿄의 삼대왕자로 불리는 전통강호 슈토쿠 농구부는 그 규모 역시 상당한 수준이며 자연히 이학교의 재학생이라면 다들 친구 중 농구부원이 한두명 쯤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담으로 미도리마가 그 협소한 교유관계에 비해 교내에서 절대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것은 그 탓이다. 윈터컵이 얼마나 큰 대회인지 실감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농구부의 늘 준수한 성적보다는 에이스의 각종 기행 쪽이 훨씬 흥미로울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11년 연속 출장이라는 기록은 3년만 이 학교 소속인 학생들에게는 아무래도 놀랍고 대단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에 반해 교직원들에게는 담당학급의 1등이 늘 성적우수상을 타가는 정도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곤 하는데, 이 차이는 물론 슈토쿠에 속한 기간이 훨씬 긴 것도 한 이유지마는 그보다는 당사자가 워낙 담담하게 당연하다는 태도를 취하는 때문이었다. 초임교사에게도 교장에게도 큰일이야 지금부터지요. 라고 대수롭잖다는 말투로 답하는 영문법 교사에게 익숙해진 동료 교사들이 1학년에게 윈터컵 나간다며? 말을 걸었다가 그 열렬한 반응에 당황하는 일도 왕왕 있다.
나카타니는 자기 목표와 이를 달성할 방도를 명확하게 아는 감독이었고 그래서 슈토쿠 농구부, 그 중에서도 1군은 이 시기가 되면 갑자기 피로한 모습으로 등교하곤 했다. 금요일 쯤엔 늘어난 연습량에 익숙해져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는 고등학생들을 보며 역시 젊은 애들은 건강하구만, 하고 가볍게 감탄하는 것이 수위 2명의 연례 행사다.
그러므로 오늘, 11월 21일, 윈터컵 진출이 결정 난 다음주 금요일에 걸어서 교문을 들어오는 타카오와 미도리마의 모습은 대단히 이례적인 광경이었다. 농구부 콤비의 리어카는 교직원들 사이에서 교정 구석의 지정석에 주차칸이라도 그려주자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슈토쿠 사람들에게 친숙한 존재였다. 낙엽을 쓸어치우던 수위의 의아한 질문에 정중하게 목례한 미도리마가 답했다.
“너희 오늘은 걸어왔니?”
“예 , 문제가 좀 생겨서 그냥 걸어왔습니다.”
“그래? 연습 열심히 해라.”
“예.”
팀메이트에게 손목을 쥐여 끌려가면서 타카오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수위는 마주 손을 흔들어 준 뒤 체육관을 향하는 2학년 둘에게서 돌아섰다. 아침연습 때문에 일찍 등교하는 다른 운동부 학생들도 속속들이 교문을 통과해 들어왔다.
아무리 자전거로 리어카를 끌고있다고는 해도 바퀴가 달린 이상 도보보다는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미도리마는 소나기나 진눈깨비가 갑자기 내려도 늦지 않도록 걸어 등교할 때와 같은 시각에 집을 나섰고, 결과적으로 타카오까지 일찌감치 등교해 체육관 문을 따놓고 환기도 시키고 연습준비를 자질구레하게 하고 있으면 정시에 감독과 주장이 나타나는 것이 농구부의 상례였다. 오늘은 그러지 못한 슈팅가드가 등교길 한 중간에 리어카를 대놓을 곳을 찾느라 약간 늦었다고 설명하는 동안 포인트가드가 계면쩍은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보고 나카타니는 그 리어카가 드디어 남의 차를 긁었겠거니 짐작을 했다.
“타카오가 갑자기 목소리를 못 내는데, 감기 같습니다.”
“안 아프”
“말하지 마. 완전히 목이 갔구나, 음. 이거야 원......”
리어카를 공터에 대고 자전거에서 내리게 하던 때의 미도리마만큼이나 매서운 눈길을 받은 타카오는 세상에 이보다 억울한 일이 있겠냐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윈터컵을 대비하는 마지막 한 달이라는 것쯤이야 작년부터 잘 알고 있었고, 컨디션을 망칠만한 활동이라곤 농구부 연습 외엔 한 가지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새벽 세네시까지 게임하다 불도 켜놓은 채 잠들기라도 했다면 면구스럽기는 해도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열이 나는 것도 목이 아픈 것도 기침이나 콧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등교 중에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온다는 이유로 아침부터 천하에 한심한 놈 취급을 받으려니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려는 참이다. 가장 답답한 것은 쇳소리가 나는 목으로는 이런 항변 자체가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타카오의 생각에도 이게 감기든 뭐든 억지로 소리를 내지 않고 목을 쉬게 내버려두는 게 가장 나은 대응이니 에이스님이며 감독님의 경고에 따라 입 다물고는 있지만. 친구네 대문 앞에서 가위바위보에 지고 생일날까지 리어카를 끌 팔자라니 이런 법이 어디있냐고 투덜거릴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목이 백 미터도 못 가서는 맛이 가다니 정말 영문을 모를 노릇이다. 턱을 매만지며 그러면 안 되지, 이거 곤란한 걸, 등의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나카타니가 생각 정리가 끝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연습하지 말고 얼른 집에 가서 쉬어라. 양호실부터 가보고, 양호선생님 계시면 감기인가 다른 건가 여쭤보고. 금방 나을 거란 말 없으면 조퇴해서 병원 들르고. 으음…처방전 미도리마에게 인증해. 딴 데로 새지말고 곧장 집에 가라, 꾀병은 부리지 말고.”
병에 걸렸지만 꾀병은 부리지 말라구요??? 되물을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 그야말로 천추의 한이었다. 감독인 동시에 교사이기도 한 나카타니로서는 통증이 없고 나른함이나 피곤도 심하지 않다면 되도록 수업은 다 마치고 하교하라는 의도였지마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말꼬리잡기 딱 좋은 소리였다. 목소리 안 나온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답답해서 몸이 배배 꼬이는 것이 아무래도 그대로 학교에 앉아있다가는 속 터져서 생일날 세상하직 하시겠다 싶다.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PG에게 에이스가 반복했다.
“보건실부터 가라. 쉬는 게 좋다 하시면 조퇴하고, 병원에서 진료 받았다고 보고를, 어이!”
말 안 듣는 어린애 취급에 기가 막혀 팔을 한 대 주먹으로 치자 미도리마가 얼굴을 찡그렸다. 마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봐준 뒤, 목을 손가락으로 감싸고 감독에게 꾸벅 인사를 올리고서 돌아선다. 연습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후배와 눈이 마주쳐 손을 한 번 흔드는 잠깐 사이 가까이 다가온 주장이 어깨를 쿡 쥐어박아 타카오의 주의를 끌었다. 누가 미야지 아니랄까봐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거친 선배였다.
“딴 데 새지 말, 이게 어디서 삐죽대 확 그냥! 내일까지 고쳐서 나와라 생일이라고 까불대지 말고. 생일 축하한다.”
“어이쿠, 그게 오늘이었나? 생일 축하한다.”
“가”
“대답할 시간에 빨리 안 사라지지?”
캡틴, 이리 매정할 수가! 속으로 한 번 징얼거려보곤 자리를 뜨려는데 영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체육관 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안을 훔쳐보니, 미도리마는 바로 연습복으로 갈아입지 않고 모여든 부원들에게 뭔가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타카오 카즈나리는 오늘 연습에 참가 안할테니 생일 선물은 자신을 경유해 전달하라던가, 그런 얘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짐작이라기보단 희망사항에 가까웠다. 1학년 때에 비해 놀라울 만치 물러진 에이스님이 과연 어디까지 신경쓰고 행동해줄 것인가 약간은 기대가 된다. 그 생각만으로도 발목에 들러붙던 우울함이 반쯤 가시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도쿄의 낙천왕 타이틀은 타카오 카즈나리에게 와야 마땅할 것이다. 타카오는 가방끈을 추슬러올리고는 휘파람을 불려다 실패해 다시 시무룩하게 1층 양호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엄청 부었네, 안 아프다고?”
네. 하나도 안 아픈데….
“일단 소염제 줄테니까 먹고, 상태 안 나아지면 4교시까지만 하고 조퇴하겠다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 안 아프다고 그냥 있다가 확 안 좋아지면 그건 또 한 일주일 간다.”
네.
“…너 말하고 싶어 죽겠지 아주?”
네!!!!!
“이거 끼고 한 번 참아봐.”
보건교사가 쥐어준 일회용 마스크는 타카오 자신의 발화를 향한 욕구를 억누르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감기환자에게 말걸기를 저어하게 만드는 쪽으로 그 효과를 드러냈다. 오늘 농구부 연습 끝나고 모여서 생일축하파티를 하려던 계획이 완전히 엎어졌다는 걸 어떻게든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담임에게도 사정을 설명한 뒤, 타카오는 적당한 두께의 교과서를 쌓아 그 위에 엎드렸다. 해당 교시의 선생님이 타카오 일어나라, 하는 소리와, 전후좌우에서 번갈아가며 아프대요, 하고 대신 대답해주는 소리를 아스라이 들으며 비몽사몽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퍼뜩 정신을 차리니 4교시 끝나기 3분 전이었다. 목을 두어번 가다듬어보자 여전히 뭐가 막힌 듯 답답하고 목소리가 거의 안 나오고 통증은 없다. 망설이지 않고 조퇴하기로 결심한 타카오는 교무실을 찾아가 반 나절만에 통달한 바디랭귀지로 유창하게 그 의사를 얻어내고 허락을 받았다. 소리내어 인사하지 못하니 더욱 깍듯하게 허리를 굽혀보이곤 돌아와 학교를 탈출할 준비를 하는 그에게 옆 반 친구가 야 선물은 내일 줄게! 소리치곤 다시 매점을 향해 돌격했다. 학생들이 제각각의 점심을 확보하려 부산히 움직이는 교사에서 혼자 느릿하게 안의 어딘가가 아니라 바깥으로 향하자니 뭐 대단한 거라도 된 기분이었다. 현실은 윈터컵 진출이 확정된 다음 주 덜컥 감기에 걸려 혼자 쓸쓸히 집에 가는 고2 남학생일 뿐이지만.
이비인후과에서는 따뜻한 물을 충분히 마시고 푹 쉬라는 상투적인 조언과 약 3일치 처방전을 주었다. 처방전 인증샷을 에이스님에게 전송한 타카오는 같은 건물에 있는 약국에 들러 종이를 알약으로 바꾸고, 식후 복용하라는 복약지시에 따라 이따 먹기로 하고 약을 가방에 곱게 넣은 후 터덜터덜 귀가했다. 이른 시간에 교복차림으로 학교 밖을 걷고있자니 힐끔거리는 눈길이 꽤 있었다. 사실 리어카를 끌고 등하교할 때에 훨씬 많이들 쳐다봤겠지만, 그 땐 남의 눈에 신경 쓸 여유가 별로 없다. 그들의 리어카는 차도운행이 기본인 만큼 운전 중에는 아무래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참, 그럼 내일도 걸어가야겠네. 신쨩이 집에 몰고 갈 리는 없고. 집에 누가 있나? 여동생과 어머니에게 차례로 문자를 보내보자 여동생에게서 곧장 답이 왔다. 요놈, 수업 중에 폰 만지고 있었구만, 오늘은 부활동. 그럼 늦겠고... 목에 손을 대고 작게 아 소리를 내본다. 여전히 전화 통화는 못 할 법한 목소리였고, 그래서 타카오는 어머니 핸드폰으로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가 연결되자마자 끊어버렸다.
[엄마ㅠㅠㅠㅠ아들 목소리 안 나와ㅠㅠㅠ감기래ㅠㅠㅠㅠㅠㅠ집이야??]
[아니 오늘 친구들만나고 저녁에 케이크 사가려고. 라면말고 죽해먹어!]
[아픈데 자기손으로 밥해먹는거 서러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별수없잖아 동생올때까지 굶을래? 아니면 도시락 사먹을래?]
[따뜻한거 사먹을거지롱]
[ㅇㅇ그래 문단속 잘하고]
[네 참 케이크 큰거^▽^!파인애플이나 키위많은거!]
결국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을 데워 먹었다. 물과 함께 알약을 세 알 꿀꺽 삼키고, 하는 김에 이도 닦고, 방에 들어가 커튼을 닫아도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을 등지고 눈을 감는다. 깜빡 잠들었다 깨니 이번엔 수업 마치고 부활동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아까 점심시간 때도 그렇고, 사람 몸이란 게 신기하네. 시간을 확인하려 집어든 핸드폰을 잠시 바라보며 타카오는 뭔가 해야할 일이 있지 않았나 고민했다. 미도리마에게서 문자가 한통. 확인했다, 한 마디가 끝이다. 농구부는 그에게 맡겨두면 될 것이고, 연습 끝나면 파티하기로 한 친구들한테는 얘기가 다 돌았을테고. 친구들과 헤어진 뒤에, 아아 그래, 약속이 하나 더 있었다. 쪽팔리단 이유로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전화를 걸어왔던 아오미네 다이키에게 11월 1일부터 자기 입으로 생일을 공지한 남자의 알차고 즐거운 하루에 대해 한껏 자랑하며 데이트를 할 계획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또 조금 울적해졌다.
인터하이 이후 아오미네와 만날 수 있는 날이 줄었다. 여태 타카오와 만나기 위해 꼬박꼬박 빠지던 하루를 마저 연습에 참가하는 눈치였다. 처음으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그가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정말로 궁금했는데 이놈의 감기가 망쳐놓았다. 아오미네는 타카오에게 성실하다. 틀림없이 자기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텐데. 아쉬움을 담아서 자판을 꾹꾹 눌러 연인에게 문자를 보낸 타카오는 바지 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고 냉장고를 뒤지러 나왔다. 물, 보다는…주스 마시고 싶다. 맨발바닥에 차가운 마룻바닥이 살짝 들러붙었다가 떨어진다. 아픈데, 아니 통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픈데 집에 혼자 있으려니 괜시리 가족에게 섭섭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따뜻하던 햇빛이 지금은 그저 밝았다. 집안이 약간 싸늘해 가디건을 꺼내입고나니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인도 확인하지 않고 제깍 전화를 받자 여보세요, 하기도 전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카오냐? 생일 축하한다! 감기 걸렸다며?」
“아니”
「워, 진짜로 목이 맛이 갔네. 미도리마한테 들었다. 아, 미야지 바꿔줄게.」
“잠”
「야, 윈터컵 예선 끝나자마자 감기를 걸려? 너 그새 존나 빠졌다 2학년이라고 설렁설렁하냐?? 유야한테 물어봐서 내일모레까지 안 나아있으면 낙사할 줄 알아라? 한 명 더 있으니까 끊지말고.」
「…미야지.」
「아, 생일 축하한다.」
「여보세요, 타카오? 오오츠보다. 생일 축하한다. 미도리마가 오늘 네 생일인데 조퇴해서 축하 별로 못 받았을 거라고 목소리도 안 나와서 엄청 심심하고 우울할 거라고 알려줘서 전화해봤다.」
「아니 그걸 뭘 일일이 알려주고 있냐, 대답도 못할 애한테. 타카오, 선물은 미야지들 경유로 해서 보낼테니까 잘 받아라~」
“감사합니다.”
「그래, 푹 쉬고. 부활동 힘내라.」
“네.”
「키무라가 사과 굴러다니는 거 있으면 깎아먹으란다.」
“흐흫, 네.”
「그럼 끊는다.」
“네.”
「쟤가 네네만 하고 있으니까 진짜 이」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이상하다는 말이었겠지. 타카오도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신쨩이 그런 수고를 했어요? 라고, 또 그래서 세 분 일부러 모여서 전화하신 거에요??? 라고 미야지가 버럭 성을 낼 때까지 호들갑을 떨어야 직성이 풀릴 텐데 고작 네, 감사합니다. 라니. 답답한 마음에 다시 몇 번 기침을 해봐도 막힌 게 뻥 뚫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타카오는 여전히 평소의 1/5도 안 되는 말수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 처지였다. 집에 굴러다니는 사과는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또 뭐 잊어버린 거 없나, 받은 문자함을 뒤져보는 중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아오미네였다.
「여보세요. 카즈? 무슨 일이야 아파? 왜? …잘 안 들려. 야!! 조용해!!!」
그러자 정말로 조용해졌다. 아마 연습 중인 듯하고, 잠시 휴식시간…이겠지? 잠깐 수다를 떨며 정신적 피로를 해소할 시간인데 에이스 눈치에 입 다물고 있을 토오 농구부를 안타까워하며 타카오는 침을 조금 모았다가 삼켜 목을 축였다.
“목소리 안 나와.”
「아…많이 아픈 건 아니고.」
“응.”
「끝나고 연락할게.」
“응.”
「끊는다?」
“응.”
끊는다. 가 아니라 끊는다? 였다. 미도리마가 불쾌해 할 정도로 나태한 녀석이 타카오의 앞에서는 늘 꼼꼼하고, 성실하고 부드럽다. 누구에게 얘기해도 아마 믿지 않을 것이다. 아오미네의 배려라니 미도리마의 난교만큼이나 이상한 말이지만 타카오 앞의 아오미네는 대개가 그렇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하면, 이 기적의 세대 에이스는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정말로 노력한다는 뜻이다. 그러니…어떻게 사람이 마음이 안 기울겠어. 생각하며 가볍게 뺨을 두드린 타카오는 조금 더 자기로 했다. 나른한 몸을 이불로 덮고, 베개 옆에 놓은 핸드폰을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끊는다? 였다.
[연습 끝났는데 집에 가도돼? 선물 걍 다음에 줄까?]
[보고 싶으니까 놀러와주세요!>△<;;]
[주소 보내.]
마중 나갈 생각으로 가까운 버스 정류장과 노선을 보냈더니 잠시 후에 택시탔음. 주소. 라는 답장이 왔다. 벌써 탔다는데 내리라고 할 수도 없고. 완전히 허를 찔린 기분은 그렇지만 오래는 가지 않았다. 아침부터 계속 자는 동안 슬그머니 붙은 눈꼽을 떼고, 세수도 하고 눌린 머리도 정돈하고 방바닥에 팽개쳤던 교복도 대강 털어 의자에 걸고. 적당히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며 타카오 스스로도 자신이 좀 들뜬 것을 금방 눈치챘다. 보고싶단 말이 뻥이 아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데, 아오미네가 이렇게나 즉효성인지는 미처 몰랐다.
택시는 비싼 값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카오 집의 현관문을 두드린 아오미네는 자기가 누군지 밝히기도 전에 벌컥 열린 문을 놀라지도 않고 피했다. 반가운 얼굴로 싱글 웃으며 몸을 물리자 그 틈으로 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온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작은 공간을 이용해 같은 동작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타카오는 본의 아니게도 고양이를 떠올렸다. 눈 앞의 폭군 포워드를 그런 작고 무력한 생물에 빗대면 위화감이 좀 들기는 했다. 쥐색 티셔츠가 비죽이 튀어나온 가방을 맨 채 그가 이마에 손바닥을 척 가져다댔다.
“…열은 별로 없네.”
“응.”
“아니, 별 거 아니면 대답 안 해도 돼.”
“그게 잘 안돼….”
으이구, 하고 웃으며 코를 한 번 쥐더니 놓아준다. 집에 찾아온 손님 손에 마실 것이 든 컵이라도 하나 쥐어주려 부엌에 가는데 이놈의 손님이 뒤를 따라왔다. 아주 어슬렁대는 걸음이었다. 왜 아무 것도 안 해도 저렇게 느긋해 보이지, 두리번대고 있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아오미네는 생수와 커피와 녹차와 우유 중에 마지막 것을 골랐다. 우유컵과 쿠키를 양손에 든 그를 데리고 다시 거실로 돌아온 타카오의 시선이 쇼핑백을 향했다. 사실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미 발견했고, 지금 것은 아오미네가 선물을 기억해내고 건네주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는 타카오가 육성으로 말하기 전에 이런 신호들을 곧바로 알아차렸고 이번에도 그랬다. 조그만 쿠키를 입에 넣고서 쇼핑백을 건네준 남의 팀 에이스는 장식장으로 손을 뻗더니 잘 보이게 놓인 가위도 내밀었다. 지금 열어보라는 의도가 명백하다. 눈을 맞추고 방긋이 웃고 건네받은 가위로 포장지를 자르고 그 속에 든 박스를 보고, 타카오는 정말로 놀랐다.
“다이쨩….”
“…왜, 그거 아니야? 마트에 있길래 샀는데. 그거 말고 딴 거였어? 포x몬?”
“아냐 이거 맞아.”
영 자신없는 표정으로 어물어물 묻기에 얼른 이 장르가 맞다고 답하고서 박스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은 타카오는 다시 한 번 아오미네와 선물을 번갈아 보았다. 타카오의 취미는 트레이딩 카드가 맞고, 그 많은 장르 중에서 이 게임이 맞고, 그야 물론 갖고싶은 카드가 이 팩에서 나온다고 아오미네에게 말한 적도 있긴 한데, 박스 단위로 까도 안 나온 사람도 있다는 얘길 해서 카드를 박스 채로 사기도 한다는 정보를 준 적도 분명 있지만, 타카오는 아오미네가 그 사실들을 기억해둘지 언정 거기서 뭔가를 더 끌어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생일 선물은 높은 확률로 그가 잘 알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농구물품일 것이라 생각하던 슈토쿠의 PG는 정말로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으로 있다가,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사실은 본인은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는데, 머리가 아 기쁜 내색 해야지 내 정신 좀 봐, 하는 사이 몸이 일어나서 눈 앞의 남자를 와락 끌어안더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너 진짜…하고 어쩔 줄 몰라 말문이 막히는 자기 목소리가 자기 귀에도 이상해 말을 잇지 못하는 타카오의 등을 힘있게 두드려준 그가 이제 조금 웃음기가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마음에 들어?”
“응.”
“지금 까볼래?”
“아니 나중에….”
“그래? 좋은 거 나오면 알려줘.”
“응.”
최대한 크게 힘을 실어 대답한 타카오가 한숨 쉬며 팔을 풀었다가, 마음을 고쳐먹은 듯 다시 어깨를 힘껏 안았다. 고마워 정말 좋아해. 아오미네가 씩 웃는 걸 안 보고도 알 수 있다. 와, 얜 진짜 왜 이러지. 활달하고 사교성이 극도로 좋은 타카오라고 해도 근본적으로 남고생이므로, 대형마트 아동 코너에 당연히 아동용으로 놓여있는 트레이딩 카드를 그것도 박스채로 구입한다는 것은 평상시에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위업이었다. 그런데 생일 선물 달라는 것 같아서 쪽팔린다고 자기 생일도 제 때 못 알려주던 이 아오미네 다이키가 그걸 해낸 것이다. 타카오 생각에도 뭐 이런 거 가지고 유난이냐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벅찼다. 팔을 둘러 마주 안은 아오미네가 이마에 턱을 얹고는 낮게 웃는다.
“이거 고생한 보람 있는데.”
고생까지 했어?!
아, 진짜 미치겠네. 말 못하고 사는 게 이렇게 괴로운 거였구나. 답답한 마음에 팔을 풀자 아직도 웃는 표정인 아오미네와 눈이 마주친다. 평소에도 이런 얼굴이면 그렇게 좋아하는 왕가슴 누나 한두 명 쯤은 거리에서 말도 먼저 걸어주고 그럴 텐데. 감기에 안 걸렸어도 말 안 해줄 생각을 하며 가무잡잡한 손이 당기는 대로 순순히 끌려가자 날렵하게 빠진 눈꼬리가 기분좋게 휘었다. 타카오는 반대 입장이라면 절대 눈 감지 않을 것이다. 눈 감은 아오미네에게 입 맞추면서 가을 막바지라 그런지 까슬한 입술이 약간 신경쓰였다. 부드럽게 뒷목을 어루만지는 손바닥은 봄과 여름에 그랬듯 11월 21일에도 보통보다 뜨끈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아 다섯 번인가? 순간 헷갈릴 정도의 빈도로 입술만이 닿는 키스를 반복했다. 낮게 한 번 신음한 아오미네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가 갑자기 생각에 잠겼다.
“더 키스 하면 옮으려나?”
“…아마?”
“그럼 안 되겠네.”
솔직하게도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목을 쭉 뻗어 가볍게 코를 깨문다. 처음 당했을 때처럼 화들짝 놀라지는 않은 타카오가 찰싹 팔을 때렸지만 아오미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팔을 풀었다. 중얼중얼 불평하며 콧잔등을 문지르는 순간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하는 소리가 났다.
“…신쨩.”
“…전해줄 게 있어 온다고? 뭐지…?”
“아마 농구부. 거의 다 왔겠다.”
아오미네가 연습 끝났다고 문자를 보낸 시간은 슈토쿠 농구부의 연습이 끝나는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교에서 집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에이스님은 타카오집으로 가는 골목길 직전 즈음에서 예의상 문자메시지를 보낸 모양이었다. 타카오의 예상대로 미도리마는 아오미네가 쿠키를 마저 해치우기 전에 도착했다.
“누구세요―?”
“타카오군의 친구 미도리마 신타로라고 합니다. …만, 아오미네?”
“정답.”
씩 웃으며 문을 연 아오미네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당황했다. 미도리마의 손에 들린 선물꾸러미야 타카오의 예측대로였다. 그렇지만 그 옆에 비슷한 걸 들고 당황한 표정으로 서있는 여학생은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예상 외였다. 타카오 카즈나리와는 그 어떤 혈연 관계도 없게 생긴데다 성은 아오미네인 남자의 등장에 완전히 당황해버린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할 주변머리가 있는 사람은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 타카오 뿐이었다. 뒤늦게 나와 평소보다 활짝 웃으며 급우에게 손을 흔든 오늘의 주인공이 토오의 5번을 가리키며 친구. 하고 작게 말하자 이번엔 미도리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약간 낯을 가리는 여학생은 들어오라는 타카오의 제스처에 살짝 고개를 흔들고는 자신의 방문 목적인 급우들의 선물 모음을 내밀었다. 그것만으로도 상황을 알아차린 PG가 흐뭇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를 미도리마가 알 턱이 없다. 그는 안경을 한 번 밀어올리고는 농구부원들로부터 부탁받은 물건이다, 하고, 그 사이에 자신이 준비한 물건은 없다는 태도로 타카오에게 선물을 건넸다. 그리고는 정말 하고픈 말이 많다는 눈으로 잠시 아오미네를 쳐다보았으나 어째선지 결국 묻지 않고 순순히 돌아서는 것이다. 더 오래 그와 눈싸움을 할 각오가 되어있던 아오미네는 어리둥절하게 뒷머리를 긁고는 문을 닫았다.
“근데, 쟤 미도리마 좋아하나?”
“…어떻게 알았어???”
“쟤가 그렇지 뭐. 내가 고백편지 전해주니까 거절편지 곱게 써서 맞배송시킨 놈이다 저거.”
“신쨩 내 생각보다 더…어…훨씬 더…그렇구나….”
“뭐 그건 지가 알아서 할 일이고. 약은 먹었어?”
“응.”
“잘했네.”
당연하다는 듯이 칭찬한 아오미네는 곧 호기심 어린 눈으로 미도리마가 주고간 쇼핑백을 훑어보았다. 뭐가 많은데, 하는 그의 기대에 부응할 겸, 나머지는 자기 호기심도 채울 겸해서 지금 하나씩 뜯어보기로 한다. 발이 넓은 타카오인지라 2, 3군에서도 생일 선물로 과자라도 하나 준비한 사람이 적지는 않을 것인데, 그렇지만 그 중 1군의 동기와 선배들로부터 선물배달이라는 귀찮은 임무를 떠맡겨진 미도리마 신타로에게 말을 걸고 이것도 좀 부탁한다며 덤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곽 뒷면에 볼펜으로 휘갈긴 짤막한 메시지가 쓰인 포키만 해도 예상대로 1군 후배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봉지를 뜯어 두어개를 한꺼번에 입에 물고 넘겨주자 곧 비닐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다음은, 루빅큐브.
“21일 전갈자리의 럭키아이템. 22일은 커터칼이다. 내일은 오하아사 최하위이기도 하니 얌전히 누워있도록.”
“신쨩이네.”
“더 말하면 목만 아프다.”
별 거 아닌 말이 이상하게 우스웠다. 키득키득 웃으며 꺼내든 세 번째는 조금 어설프게 포장된 양말, 네 번째는 데오드란트, 그 다음은….
“누구지?”
“미도리마? 어 씨 잠깐, 진짜 미도리마네.”
허둥지둥 일어난 아오미네가 문을 열자마자 이번엔 혼자 온 미도리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 돌아가라.”
“그거 되게 집 안에서 해야 될 거 같은 대사다?? 아까 여자애는?”
“먼저 돌아갔다. 아오미네 너도 그만 가라. 타카오, 환자가 시시덕대면서 놀지 말고 얌전히 있으란 것이다.”
“너…그 말 하려고 그 여자애 혼자 보낸 거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날도 밝은데 혼자 보내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지?”
말없이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타카오가 헛웃음을 흘렸다. 갈림길까지만이라도 최대한 미도리마 군과 여러 가지 얘길 해보려 애썼을 급우에게 대신 사과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오미네도 비슷한 심정이었던지, 아까 여자애가 집 방향이 미도리마와 한참은 같다는 걸 확인하더니 바로 가방을 둘러매고 떨쳐나섰다.
“내일 봐 신쨩.”
“내일은 낫는다면 말이지.”
“나 간다.”
“응, 잘 가.”
190cm가 넘는 남고생 둘이 나란히 걷기엔 조금 비좁은 복도를 아오미네의 뒤에서 걸으며 미도리마는 이 문제아가 웬일로 이리 고분고분 말을 듣나 의아한 기색이었다. 그 문제아가 천하의 둔해빠진 이런 나무토막을 좋아하는, 슈토쿠의 성도 이름도 모르는 여자아이의 연애사를 돕기로 이미 결심한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녀를 따라잡으려는 일념 하에 상당히 전투적인 태세로 성큼성큼 걷던 아오미네가 갑자기 멈춰섰다.
“왜 그러지?”
“아… 폰 두고 나왔다. 잠깐 기다려.”
“타카오 귀찮게 하지 마라.”
“알았다니까.”
빠른 걸음으로 순식간에 문 앞에 돌아온 아오미네는 문이 열리는 중에 틈새로 비집고 들어갔다. 핸드폰은 제대로 가방에 들어있었다. 아직 문고리를 붙든 채인 타카오에게 허리를 굽혀 입을 맞추자 흠칫 몸을 움츠린다. 너무 급하게 움직였나 반성하게 만드는 반응이었다.
“다이쨩?”
“아니, 그대로 가려니까 왠지 억울해서.”
“…둘이 이런 데 좀 닮은 거 알아?”
“난 연애 하잖아.”
“…그렇지….”
짧막한 대화가 끊어지자마자 다시 입술이 닿았다. 얇고 민감한 피부를 남의 혀가 핥는 감각에 이번에는 아오미네가 움찔했다. 슬쩍 얼굴을 물리는 그를 빤히 바라보던 타카오가 싱긋이 웃었다. 늘 조잘조잘 수다스럽고 웃을 때에도 소리를 내는 남자의 조용한 미소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새롭지만 낯설지는 않은 그런 얼굴이다. 아오미네는 살짝 한숨을 쉬고, 이마에 이마를 조금 비볐다가 다시 한 번 입술을 포갰다.
“갈게.”
“응 다이쨩.”
“아 그거다.”
“신쨩 있었으니까.”
“응.”
문제가 풀렸다는 듯이 시원스레 웃은 그가 오늘은 전화 안 할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제 손으로 현관문을 닫았다.
카즈, 생일 죽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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