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End -5-
스포츠 경기에서는 만화보다도 만화 같은 사건이 종종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한 명 있어도 절대적 우위를 점할 천재가 다섯 명이나 같은 해에 같은 학교엘 입학하지를 않나, 명실상부 고교최강으로 군림하던 강팀을 여고생 감독이 이끄는 창단 2년째의 신생팀이 이기고 우승컵을 차지하질 않나, 1학년 1학기부터 강호교에서 레귤러로 뛰며 노룩패스를 장기로 내세우던 포인트가드가 어처구니없는 패스미스로 팀을 1회전에서 떨어트리질 않나. 타카오에게 있어 남 일이었던 전자들과 달리 마지막 사건은 남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너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패스를 받은 상대편도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피가 식는다는 게 대체 어떤 느낌인지 처음으로 알았다. 히 웃으면 열 명 중 대여섯명은 앞니가 빠져가지고 휑한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의 경기도 아니고 전국의 남자 고등학생 농구부 중 제일 잘하는 팀을 가리는 자리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실책이었다. 4쿼터의 막바지였던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팀을 위해서라면 커다란 미스에 반쯤 정신이 나간 타카오를 교체해 다시 한 번 기회를 노릴 시간이 있는 편이 나았을 테지만, 타카오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 분투하는 팀메이트들을 벤치에서 지켜보는 것보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끝나버린 지금이 그나마 덜 고통스러웠다.
누구도, 심지어 미야지 유야조차 타카오를 쳐다보지 않았다. 모두가, 그를 보면서는 비난의 기색을 감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명백한 원흉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해주는 부원들은 누구 하나 뺄 것 없이 전원 좋은 녀석들이다. 라고, 이런 상황에서도 주변을 관찰할 여력이 있는 자신에게 타카오는 혀를 내둘렀다. 물론 그렇게 현실에서 눈을 돌려도 마음은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다. 미도리마는 질책하기는커녕 찡그리지도 않고 의연하게 짐을 챙겨 코트를 떠났다. 사람이 뭔가에 화를 낸다는 건, 그래도 아직은 대상에 대해 어떤 기대가 있어 상호교류를 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완전히 마음이 떠났을 때엔 거짓말처럼 아무 감정도 일지 않는 신기한 것이 사람 마음이다. 타카오가 여태 알아온 미도리마 신타로라면 이런 상황에서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신랄하고 통렬하게 얼마나 한심한 짓이었는가를 지적할 녀석이었다. 하지만 미도리마는 아무 말도 않고, 비난하는 시선도 위로하는 손길도 주지 않고 그저 자기 일에만 신경을 할애했다. 그 무반응은 안 그래도 차라리 욕을 들어먹는 쪽이 맘이 편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타카오의 정신에 결정타를 먹였다.
아오미네는 윈터컵 마지막 날까지 출장했다. 와카마츠가 우승컵을 거머쥐고 은퇴했다. 물론 그의 팀이 슈토쿠와 동시에 탈락했어도 타카오는 토오의 에이스와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 마음을 헤아렸는지 어쨌는지 아오미네 쪽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타카오가 그에게 만날래? 라고 짧게 연락을 넣은 것은 감독의 호출을 받았던 날이었다. 미도리마며 다른 부원과 마주 할 얼굴이 없어 여태까지 거의 대화가 없던 탓에 어디 상담도 한탄도 할 곳이 없었다.
“감독님이 나한테 뭐 딱히 크게 유하지 않은 거야 옛날부터 알았는데 꼭 지금 그래야 되냐고 진짜….”
“왜, 뭐했는데?”
주먹 쥔 왼손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반대쪽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쥔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대답이 없다. 아오미네는 따뜻한 커피를 빨대로 적당히 휘적대며 기다렸다. 슈토쿠가 질 때 토오도 경기 중이었기 때문에 직접 보지 못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안다. 남이 뭔가를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그는 상심한 타카오가 1월이 다 가도록 소식이 없을 수도 있겠다고 짐작했었다. 길게 앓는 소리를 내고, 또 느리게 한숨을 내쉰 타카오가 작게 말했다.
“계속 할 거면 주장은 그대로 나일 거니까 그거 알아두라더라.”
“…너 주장 시킨대?”
“응.”
전부터 언질이 있었고 그 전부터 낌새도 있었다. 주장 자리에 미도리마 신타로를 앉히는 건 그야말로 부적절한 인사였다. 실력보다는 인간관계에 직결하는 직책이다. 그가 자진해 받아들이고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자리는 딱 2인자의 의자까지다. 나카타니 감독의 마음속에서 접속사가‘그러면’과‘그러니까’중 어느 쪽이였던지는 몰라도, 4번 타카오 카즈나리는 슈토쿠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물론, 그 타카오가 슈토쿠를 지게 만든 전적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신쨩이….”
“미도리마가. 뭐래?”
“아무 말도 안 했어….”
아오미네는 입을 벙긋 벌렸다가, 다시 딱 닫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한 일인 거다. 마른 세수를 몇 번이고 하는 중에 감정이 꾹꾹 눌려 껍질의 빈 곳으로 비져나왔다.
“미치겠다 진짜….”
“얼른 잊어버려.”
“어떻게 그래! 나 때문에 졌는데?”
“여태 네 덕에 이긴 경기도 많아.”
“다이쨩은 그렇겠지.”
신경질적으로 받아치며 고개를 들자 아오미네도 살짝 짜증이 난 얼굴이었다. 속이 배배 뒤틀리는 기분이 된 타카오의 양손을 남의 손이 덥석 잡는다. 반사적으로 뒤로 빠지려는 걸 힘주어 붙잡은 아오미네의 눈은 겹쳐진 네 개의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잠시 손을 빼려 그와 힘겨루기를 하다 포기한 타카오도 자연스레 자신들의 손으로 향했다. 뭐 신기한 일이라도 일어나나 어디 한 번 보자는 심사였다. 약간 땀이 배어나온 손바닥이 손등에 시간을 들여 조금씩 달라붙었다. 따뜻해서 더 비참했다. 그럴 때도 있는 거야, 하고 아오미네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는 너는? 그런 적 있어?”
예상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손을 뿌리칠까 했다가 낭비할 기력이 없어 그만 두었다. 실수도 실력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실수에서 재기하는 것은 실력과 직결할 것 같다. 타카오는 자기가 농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전혀 없었다. 미도리마 신타로의 안중에도 들지 못한 상태로 형편없이 져버렸을 때에도 그만두지 않았는데 지금, 실수 때문에 그만둔다면 너무 한심하고 억울했다. 그렇다고 그만두지 않는다면 작년에 팀을 지게 만든 주장이란 무지막지한 직함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런 걸 진 채로 인생을 즐기려면 얼마나 대책 없이 인생이 즐거워야하는 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엄지를 신경질적으로 꿈틀거리다, 살짝 손을 당기자 뭔진 몰라도 아오미네 생각에는 그 뭔가가 충분했는지 이번에는 놓아주었다.
“간다.”
“그래.”
부활동을 며칠 빠졌지만, 일주일 내내 땡땡이 칠 담력은 없다. 아무도 없는 부실 앞에서 타카오는 계속 주저하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며 돌아가면 면전에서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 마음의 준비가 아직이었다. 그 준비라는 게 가능하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역시 조금만 더, 하고 문고리에서 손을 내리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등을 꾸욱 밀었다.
“…신쨩.”
“들어가.”
“…….”
“들어가.”
평소대로의 말투였지만 평소 같은 위압감이 없이, 조금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타카오는 버티기를 그만두고 순순히 천천히 부실 문을 열었다. 일찍 온 탓에 아무도 없었다. 미도리마는 문 앞에 딱히 막는 건 아니지만 지나가려면 확연히 방해가 되도록 서있었다. 침묵 속에서 락커가 늘어선 부실이 왠지 모르게 낯설어 보였다. 결국 타카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아아. …결정한 건가?”
“아직. 그런 건 왜 물어봐?”
그러자 에이스님은 대답을 망설였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 시간을 버는 어린 남자아이 같은 모습에 타카오는 한쪽 눈썹을 찡그린 채 파트너를 올려다보았다. 재촉하는 눈길에 마음을 굳힌 듯 그가 마른 입술을 한 번 핥고 말을 꺼냈다.
“네가 농구를 계속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신쨩이?”
“그래.”
“거짓말, 인사를 다하지 않았으니 그런 실수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지?”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어떻게 노력해왔는지, 내가 가장 잘 안다. 운이 나빴던 거다, 타카오. 천명이 내리지 않았던 거라고.”
그렇다면 왜 그 말을 그 때 진작 해주지 않고 지금에야 하는 건가. 타카오는 입을 꼭 다문 채로 있었다. 원망스런 눈길에 미도리마는 더 당혹한 것 같았다.
“내가 어설프게 독려해봤자 독이 되면 독이 됐지 도움이 될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니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뒀는데…내 방법은 틀린 것인가?”
“요는, 제대로 위로할 자신이 없으니까 아예 모른 척을 했다.”
“…그렇게 되지.”
“그럼 눈도 안 맞출 필요는 없었잖아?! 난 니가, 환멸했습니다 타카오 이제 시야에 안 넣습니다 모드라도 켠 줄 알았다고?!”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가만 두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으니까!”
“난 니가 나한테…!”
실망, 한 줄…. 그 단어를 생각하자마자 감정이 북받쳐 타카오는 이를 악물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눈을 가리고, 그래도 멈추지 않아 웅크린다. 이런 일로 울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울 일이 아니면 대체 뭐가 울 일이지? 머릿속은 엉망진창에다 가슴 속은 서럽고 억울했다. 소리죽여 오열하는 그에게 다가온 미도리마가 옆에 가만히 내려앉아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 인간은 정말로 위로하는 법도 모른다! 그런 놈한테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억울해!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이길 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흐느끼는 타카오를 꽉 끌어안은 에이스님이, 별안간 평소의 어조로 단호하게 말했다.
“타카오, 너는 인사를 다했다. 내가 보장하지. 운이 없었던 것뿐이다. 그만둘 이유로는 턱없이 부족해.”
아까와 별 다를 것 없는 논지였다. 동어반복이나 하고 있는 주제에 갑자기 왜 이렇게 확신에 찬 건지 어이가 없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하는 타카오 자신의 입에서 우는 소리인지 웃는 소리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게 나오는 지금 상황이었다. 어이가 없는데 이상하게 웃겼다. 등을 끌어안은 슈팅가드는 잠시 침묵했다. 생각해서 한다는 말이 울다가 웃으면 뭐라던데, 하는 참신성 제로의 해묵은 문구라는 구석이 참으로 미도리마 신타로다웠다. 울면서 웃던 타카오의 입에서는 급기야 요란한 딸꾹질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딸꾹질을 하고 눈물을 짜고 콧물을 들이키면서 그가 말했다. 야, 너어, 신쨩, 너 나랑 평생 친구해야 된다. 나만 이런 못 볼 꼴 보이는 건 말도 안돼, 나도 니 추태를 똑똑히 목격해주겠어! 현재진행형으로 가관인 모습에 미도리마는 한숨을 푹 쉬었다.
“곧 다른 사람들도 올 거다. 그 얼굴 좀 어떻게 해.”
하지만 그 ‘어떻게’에 해당하는 적절한 방법을 미도리마라고 아는 것도 아니어서, 타카오는 눈이 좀 부은 상태로 아침 연습에 참가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후임이 사라져 아직 은퇴하지 못한 캡틴에게 한바탕 불호령을 듣고 감독에게는 무단결석의 대가로 특별메뉴를 하사받은 뒤의 일이다.
워낙 발이 넓은 분위기 메이커에다 1학년 때부터 스타팅멤버로 뛰어온 탓에 공적인 질책 외에 타카오를 탓하는 말소리는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카오는 한동안 입을 꾹 다문 채 연습에만 몰두했다. 사실 연습량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있지를 못하는 타카오 카즈나리가 웃지도 떠들지도 않는다는 점이 그가 더 없이 진지하고 날카롭다는 사실을 뒷받침했다. 슈팅가드와 포인트가드가 연습 후에도 남아서 자율연습을 하는 것도 그대로였다. 이 시간에는 본래부터 말수가 적었기 때문에 타카오에 한해서는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미도리마 쪽이 간간히 생각에 잠겨 파트너를 돌아보던 것이다. 신경이 아직도 곤두선 상태이고 이미 못 볼 꼴을 보인 상대라 타카오는 익살을 떨거나 돌려말하지 않고 느낀 대로 툭 뱉었다.
“왜 자꾸 쳐다봐?”
“고민이 있다는 거다.”
“…그래, 들어줄 테니까 어디 말해봐. 털어놓기만 해도 꽤 도움이 되거든. 말하면서 자기 안에서 정리도 되고.”
“사실 내가 그렇게까지 동요한 건…인사를 다하는 네게 천명이 없을 수도 있다는 발견 때문이었다.”
어쩌면 나도…하고 흐려지는 파트너의 말을 들으며 타카오는 기가 막혔다. 그럼 여태까지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했으니 겸허하게 천명을 기다린다가 아니고, 나한텐 천명이 있으니까 인사만 다하면 이루어진다 이거였단 말인가?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 기가 찰 정도로 확고한 신념이 왜 이제와 흔들린 것인가가 신경 쓰였다.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원인 중 가장 그럴싸한 것이 하나 있다. 물론 전혀 상관없는 헛다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타카오 카즈나리가 처음으로, 절실하게, 이 에이스에게 관을 씌워주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타카오에게서 사진이 한 장 날아왔다. 슈토쿠의 4번 유니폼이었다. 아오미네는 뒤이어 도착한 메시지를 한 번 슥 보고 답장을 보냈다.
[가벼운데wwww무거워www]
[커플티라고 생각해]
[에wwwwwwwwwwwwwww]
일주일에 걸친 윈터컵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전날 시합에 진 팀들의 3위 결정전이 먼저 진행되고 뒤이어 마지막 시합이 시작되는 것이다. 워밍업을 위해 코트로 나가는 선수들을 지켜보던 모모이가 아, 하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 있나요?”
“앗 아뇨 개인사정…다이쨩네 부모님 잘 오셨네요.”
“아오미네 군의 부모님 말입니까?”
“네. 그 바보가 말을 어제 해서! 정말 겨우겨우 자리 구했거든요.”
“어딥니까?”
“네? 저~쪽, B-6….”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하라사와 감독이 매니저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목례했다. 언제 한 번 만나뵙고 싶었었다는 말에 소녀가 애매한 얼굴로 웃었다. 아오미네의 양친은 외아들이 막 농구를 시작할 무렵부터 모모이의 어머니가 아오미네를 195cm가 넘도록 키워낸 지금까지 계속 바빴고 앞으로도 바쁠 예정이었다. 아오미네 부부가 관람할 수 있었던 아들의 경기는 초등학교 때 두 번뿐이었지만 그들의 농구바보는 농구 하느라 바빠서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어제, 여느 때처럼 늦게 퇴근한 그들은 아들에게 처음으로 내 시합 보러오라는 소리를 듣고 당황했다. 다이쨩네 아줌마아저씨에게 내일 경기 혹시 티켓 좀 구할 수 있냐는 소리를 듣고 모모이는 놀라고 당황해 우선 저 깜둥이를 두들겨주러 건너갈 것인가를 꽤 진지하게 고려했었다. 문득 달력을 보았다가 내일 결승전이 아오미네 다이키가 일본에서 치르는 마지막 시합인 것을 깨닫자마자 결론이 났다. 토오 농구부의 매니저는 내일 결승전을 치를 에이스에게 달려가 호되게 꾸중하고 때리고 걷어찬 뒤 소꿉친구의 눈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들여야지 내일 경기의 티켓을 오늘 얻을 수 있는지를 시연했다. 그러나 매니저로서의 소임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11시 반에는 벤치가 아닌 관람석에서 경기를 보기로 되어있는 2군들에게 하나하나 전화를 걸어 혹시 양도해줄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에 아오미네 본인을 동원해 두개의 좌석을 확보한 후 재웠던 것이다. 모모이 본인은 새벽 2시에 양도티켓을 확보하고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에게는 그렇게나 중요한 사안이었다.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고 로테이션을 따라 다시 하프라인 쪽으로 이동하며 타카오는 상대팀의 스타팅멤버를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동갑내기 슈팅가드와 대화하던 주장이 관중석을 보며 두리번거린다. 신경 쓰이는 구석이 있는 모양인데, 사소한 거라도 주의를 돌리는 데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뭔지 모르는 이상 큰 의미는 없는 이야기였다. 라인 밖에서 던져주는 공을 받아 리듬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곧장 패스한다. 곧바로 모션에 들어간 미도리마의 손에서 공이 떠난다.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체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평범한 삼점슛이다. 오늘 게자리는 1위, 전갈자리는 2위. 무슨 자리를 주의하라는 사족도 없었고, 코끼리 목상 옆에 전갈자리의 럭키아이템인 병아리모양 지우개도 살며시 놓아두었다. 미도리마의 말버릇을 빌자면 인사는 다했다. 이번에도 천명이 없다면 만들어 내서라도 이길 것이다. 3년 내내 놓쳐온, 마지막 기회가 바로 오늘이었다.
짧게 휘슬이 울리고, 심판의 지시에 따라 다섯 명과 다섯 명이 정렬한다.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잘 아는 목소리인데 주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에는 짐짓 점잖게 들린다. 시선이 마주친 아오미네는 근질근질하다는 눈빛이었다. 타카오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서 이기고 싶어서 더는 기다리기 힘들다. 양 팀 선수들이 팁오프를 대비해 자리를 잡는다. 심판이 공을 위로 던져올린다. 함성이 터진다.
기적의 세대 마지막 시합이 시작되었다.
“캡틴, 누구 응원하실 거에요?”
“Huh? 당연히 토오지. 니들은 우리 이긴 데 응원하고 싶냐?”
“카가미군, 그렇게 따지면 슈토쿠도 우릴 이겼었는데요.”
“누가 그걸 모른대? 제일 최근에 진 놈이 제일 얄밉잖아!”
“뭐, 그건 그렇습니다만.”
“어차피 너도 여친편 들 거 아냐?”
“…음, 굉장히 난해한 질문이군요.”
“이 세상 난해가 다 빠져 죽었구만.”
“캡틴, 얼어죽었다를 더 많이 써요.”
“아 그래? Thanks.”
이 일련의 대화로 흑백 중 어느 쪽을 응원할 것인가에 대한 세이린의 입장이 정해졌다. 같은 도쿄 지구에서 내내 부딪쳐온 만큼 슈토쿠와 토오, 양쪽 다 감정이 각별하지만 카가미가 말한 대로 더 최근에 세이린을 이긴 것은 8강전에서 만난 슈토쿠였다. 내년에도 또 예선부터 지겹게 맞붙을 팀들이니 봐두라는 것이 아이다 감독의 지령이었다. 참고로 본인은 작년까지 3년간 세이린 농구부의 감독을 역임한 따님과 오붓하게 붙어앉아 같은 경기를 관전 중이다. 기적의 세대를 막을 수 있는 건 동급의 플레이어 뿐이라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해석의 여지가 있는 법칙은 이 경기에서도 통용되는지라 아오미네의 마크맨은 미도리마이고, 미도리마의 마크맨 역시 아오미네였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완전히 막고 있는 것인 아니다. 상대방의 득점을 늦추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단순히 계산해도 미도리마의 슛은 3점, 아오미네의 슛은 2점. 슈토쿠와의 경기는 필연적으로 슈팅가드에게 무게가 실린다.
“9번 오늘 컨디션이 좋네요.”
“아오미네 놈 이젠 제대로 보고 패스하네.”
“여전히 트리플 스렛하고는 안 친하군요.”
“어, 이쪽에 손 흔들지 않았어요?”
“에이, 설마?”
“이쪽이 아니고 저희 아래쪽인 거 같네요.”
“료, 잘하고 있어. 이대로만 해. 어이, PG 스틸 조심해라. 마크 제대로 해!”
빠릿한 대답을 들으며 아오미네는 유니폼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군더더기 없이 집중된 상태가 기분이 좋다. 못 따라오는 놈도 걸리적대는 놈도 없어 매끄럽게 돌아가는 하이페이스의 경기였다. 미도리마가 쏘아올린 공이 떠있는 동안 다음 플레이를 시뮬레이션 한다. 나머지 4명이 완벽하게 그를 보조했다. 하라사와의 계획대로 전적으로 아오미네 다이키에게 맞춘 팀을 이끌고, 미도리마의 팀과 싸운다. 테츠 같은 녀석이 아니어도 저절로 피가 끓는다. 이기겠다고 아득바득 달라붙어오는 녀석들을 보면, 하, 웃음이 나왔다. 턴어라운드, 페이크로 다시 원위치. 레이업을 가장해 센터를 끌어들이고, 준비가 된 사쿠라이에게 공을 넘긴다.
“죄송합니다!”
역시 오늘따라 잘 들어간다. 아까 타카오가 터트린 삼점슛에 자극받은 걸지도 몰랐다. 아오미네는 돌아가지 않고 상대편 에이스의 마크로 남았다. 여, 하고 눈인사를 건네자 안경 너머로 미도리마가 그를 쏘아보았다.
미도리마는 선택해야 했다. 3점라인 밖으로 나가 확실하게 끝을 내거나, 아니면 반대로 골로 달려가 안전하게 2점을 따내거나. 미도리마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자신이 아오미네의 블로킹을 피해 슛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 플레이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슈토쿠는 진다. 또 우승을 목전에 두고 미끄러지는 것이다.
미도리마는 선택했다. 정확하게 계산한 두 걸음의 도움닫기 후 뛰어오른다. 팀메이트가 무어라 고함을 질렀지만 들어온 반대편으로 다시 흘러나간다. 할애할 신경이 없으니 무슨 의미인지 이해도 할 수 없다. 최고점에 도달하기 전에 팔이 움직였다. 타이밍이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한 발 먼저 본능이 어서 끝을 내야한다고 경종을 울린 것이다. 등 뒤에 기척이 있다. 붙잡히기 전, 있는 힘껏 내리친다. 뒤에서 달려온 묵직한 몸뚱이와 부딪쳤지만 이미 늦었다, 볼은 림을 통과한 뒤였다. 미도리마는 추돌로 인해 중심을 잃어 휘청거리면서도 제대로 착지하기 전부터 점수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휘슬 소리가 함성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시계가 00:00을 표시하고 있었다. 팀메이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이겼다.
가장 먼저 에이스님에게 달려들었던 타카오는 2학년 센터에게 눌려 아주 약간 불편한 상태로 팀원들과 기쁨을 나눴다. 미도리마의 포효가 함성과 박수갈채에 묻혀 잘 들리지 않은 게 조금 아깝다. 그가 삼점슛만 노려왔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외의 수단으로 득점 못할 리가 없는데도, 미도리마가 삼점라인 안에서 패스를 받았을 때 타카오마저도 일순 당황했다. 3년 동안 생긴 비이성적인 선입견을 깨트려버리는 덩크였다. 천재 슈터 미도리마 신타로의 마지막 플레이가 원숭이도 할 수 있는 덩크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지만 미도리마도 삼점슛을 시도해 준우승에 머무르기보다는 한 번 원숭이가 되어서라도 우승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마터면 혼자 ‘무관인 기적’이 될 뻔했네, 신쨩!”
“입닥쳐, 타카오.”
“와, 캡틴한테 폭언이 심각하다!”
긴장이 쫙 풀렸는지, 시시덕거릴 기운이 또 생긴다. 타카오는 에이스님과 투닥거리며 정렬하러 센터라인으로 향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스몰포워드의 등을 세게 한 대 친 아오미네가 시원스레 웃었다.
“잘했구만 뭘! 재밌었어!”
“와, 준우승이면 잘했어도 아니고 재밌는 시합이니까 괜찮대.”
“니들도 칭찬해 준 거니까 고마운 줄 알아라.”
“헉! 신쨩! 나 이긴 상대한테 칭찬 받는 기분이 이런 건줄 처음 알았어!”
“호오, 흥미롭군. 어떤 기분이냐는 거다.”
“우리가 이겼지롱!”
“전적으로 동감이다.”
3년 내내 스타팅멤버로 손발을 맞춰온 파트너끼리는 깐족거리는 데까지 합이 척척 맞는 모양이었다. 아오미네는 조금도 욱하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뒷짐을 졌다. 지긴 했지만, 재밌는 시합이었으니까 진심으로 괜찮은 모양이었다. 타카오도 결국 피식 웃어버리고, 심판의 구령에 따라 인사하며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외쳤다.
“역시 지는 기분은 이상하단 말야.”
“분한 게 아니고?”
“…별로 분하진 않은데, 그냥 이상해. 속이 부글부글하다가도, 아~ …농구하고 싶다.”
“어제도 했잖아?”
“안 잊어먹었거든?”
“농구 진짜 좋아하네 다이쨩.”
“응. 그런가봐.”
“나도 좋아해.”
“응. 그래서 좋아해.”
“응응 나도… 응? 나를?”
“어.”
껍질을 깐 호빵을 내려다보며 아오미네가 덧붙였다. 연구 삼아 니네 플레이 돌려보다가 알겠더라고. 꼭 니네 것만 끝까지 못 보겠는 거야. 보고 있으면 근질근질하니까. 나도 한 판 땡기고 오면 늘 사츠키한테 들켜서…음. 이게 아니고 아무튼. 흠…. 다 식었는지 호빵을 입술에 한 번 대어본 아오미네가 흰 숨을 잔뜩 내쉬었다.
“너 보고 있으면 나도 농구하고 싶어지더라고. 그래서 아닐까?”
너한테 농구는 백날천날 늘 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라고, 농을 칠 수가 없었다. 말문이 꽈악 막혀있다. 이해는 잘 안되는데, 기분만은 무슨 세기의 사랑고백을 받은 것 같았다. 호빵을 입에 문 아오미네가 손을 들어 타카오의 귀를 살짝 만졌다. 반응을 기대하는 눈치다. 처음에, 아주 처음에. 시작할 때에, 어쩌다 나랑 사귀고 싶어진 거야? 라고 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아, 하고 입을 열었다가 타카오는 다시 침묵했다. 지금 얼굴을 숨기지 않으면 빨개진 모습을 훤히 보여주고 말 것이다. 편의점 바깥 테이블, 피자호빵을 식혀 먹는 아오미네 다이키의 옆자리에 캔커피를 쥐고 앉아 타카오 카즈나리는 필사적으로 답안을 만들었다가 파기하고 다시 고민했다.
“…고마워.”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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