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END
고청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나갈 것입니다(근엄
[공항 도착~버스시간 기다리는중! 그쪽은 지금 새벽이려나? 좋은꿈꿔♡]
하트를 스무 번은 지웠다가 다시 넣은 것 같다. 그렇게 소란을 떨어놓고, 아직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데 전과 똑같은 식으로 연락하려니 스스로도 좀 갑갑하다. 그렇지만 아오미네를 그의 말대로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타카오에게 그건 그를 혼자 내버려두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무 소식도 없이,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을까 오로지 상상만 하면서 기약도 없이 그저 기다리기만 한다니 아오미네는 괜찮을지 몰라도 타카오가 안 괜찮았다. 애초에 타카오는 문제가 있을 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하기보다는 여러 사람 만나가며 얘기하고 얘기를 듣다 방법을 찾아내는 타입이었다. 아오미네가 딱히 문제가 되는 언동을 보이지 않아도, 그냥 아오미네 다이키로 있는 것만으로 그를 왜소하게 만드는 거라면 한 사람이라도 덜 서러운 편이 낫다고 타카오는 생각했다. 아오미네와는 정반대의 생각이었다. 물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좋아만 하고 싶었다. 미움까지 더할 필요는 없다. 좋아하기만으로도 벅찬 지금 그 외는 필요 없었다.
[♡]
이런 답장을 보내오는 남자를 대하는데 애정보다 더 마땅한 것을 타카오는 모른다.
“야, 너는 술을 들고 오려면 안주거리도 좀 사오든가 하지 어떻게 이렇게 경우가 없냐!”
“니 밥통이 아~뭐가 들어왔네~하게 채우려면 마트 가야 돼, 새끼 공짜술을 줘도 난리야.”
“말이나 이쁘게 좀 하면…미트볼 데워올테니까 기다려!”
카가미가 기다리라고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관습적인 표현이다. 정말로 아무 것도 안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기세좋게 걷어찰 것이 틀림없었다. 아오미네는 쫄래쫄래 집주인의 뒤를 따라 부엌에 가서 잔을 들고 나왔다. 이거면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맥주는 미리 따두면 김이 다 날아가버리니까 그대로 두고 TV채널이나 돌리면서 기다린다. 결국 멈추는 채널은 동물 다큐멘터리였다. 다 알아듣지 못해도 화면을 보면 대충 무슨 내용인 줄은 아니까. 곧 카가미가 울긋불긋하게 야채를 새로 썰어넣은 미트볼을 내왔다.
“그래, 뭔 일이야?”
“우리 사이에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오고 가고 그러냐?”
“나가시죠.”
“거 새끼 야박하긴.”
투덜거리며 아오미네가 맥주를 잔에 부었다. 거품이 넘치지 않도록 절묘한 선에서 멈추고 병에 남은 나머지는 제 입을 가져간다.
“되게 친한 사람이 있다고 쳐.”
“어.”
“근데 걔가 나 잘난 게 질투나고 그런 자기가 너무너무 싫대. 그래도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어. 너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
“누구 얘기야?”
“있어, 묻지 마.”
“흠. 비슷한 상황에 처해본 사람으로서 조언하자면, 일부러 져주거나 하는 짓은 절대로 하지마라. 그 순간 너는 개x발 x되는 거야.”
“…너 언제부터 이렇게 입이 더러웠더라?”
“너한테 옮았지 새꺄!”
“어째 테츠가 쪼더라.”
졸업 직후 건너간 미합중국에서 아오미네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였다. 복잡한 계약이네 비자네 하는 문제는 딱 귀까지만 도달하고 그 이상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가 할 일은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운동해서 신나게 농구하는 것이다. ‘신나게’ 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온 실력을 발휘해도 거기에 맞춰 끈질기게 대항하는 적수뿐이다. 사생활에 있어서도 완벽했다. 집 근처에는 늘 사람이 모이는 길거리 농구장이 세 군데나 있고, 걸어서 15분이면 카가미네 집의 초인종에 손이 닿았다. 아직은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프로란 걸 들키지 않고 지칠 때까지 플레이 할 수가 있다. 밝은 조명과 잘 닦인 코트, 관객들의 커다란 함성이 없는 대신 새가 울고 개가 짖고, 바퀴를 멈추고 지켜보던 차의 클랙션, 휘파람, 박수갈채가 있었다. 당돌하게 덤비는 꼬마를 한껏 놀리기도 하고, 기분이 내키면 점심까지 사먹여 가며 크로스오버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내킬 때마다 언제든지 원하는 종류의 농구를 할 수 있다. 자유와 기회의 나라인 줄은 잘 모르겠고, 아오미네 다이키를 위해 예비된 약속의 땅 같았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내기에 이긴 대가로 추천받은 음식점에서 메뉴를 하나씩 먹어보다가, 이거 카즈가 좋아하겠다, 생각이 든 순간 그 완벽함은 가장 중요한 게 없는 가짜가 되어버렸다.
원하는 게 있으면 가지면 된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줄곧 술술 풀려온 인생에는 어느샌가 관성이 붙어있었고, 그 힘은 아오미네에게 젊은이 특유의 대책 없는 패기로 나타났다. 실패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하려는 일은 당연히 성공할 거라 여기는 오만함은 이 천재가 타고난 천성이기도 했다. 난 여기가 좋으니까, 카즈만 좋다면 둘이 여기서 같이 살면 그게 제일 좋겠지? 기껏 초대한 타카오를 고작 집 주변이나 데리고 다닌 건 그래서였다. 여기서 살면 어떨 것 같아? 마음에 들어?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옮길 테니까. 당연히 그가 자신과 함께 할 거라 생각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 혼자 헛물을 실컷 켜고 있던 셈이다. 타카오가 대답하는 대신 반지를 들고 있던 손을 오므렸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아오미네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참 자기 좋을 대로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오늘 동아리 술자리겸 동창회 했다www다들 술좀들어가니까 농구로 암수를 가리자고 난리www아니 첨보는 슈토쿠동창회 멤버들한테 승부를 걸다니www미야지(형) 선배 반 가를거냐고wwwww난 미도리마랑 같은 편 안넣어주구www다들 나빴어wwwww]
[여긴 아직 밝은데 술꾼이랑 얘길다하네. 해장했어?]
[꿀물 타먹고 왔지렁 다이쨩은 머ㅜ해]
[개랑 호랑이랑 놀지롱.]
[타이가 도망쳐!!!매우 빨리 도망쳐!!!]
[걔가 키우는데]
[쿠로코가 개무서워한댔는데?!]
[그 쿠로코가 하도 개를 들이대서 극복했다고 합니다]
[쿠로코…무서운 아이…!]
아오미네는 언제나 위를, 앞을 보고 있었다. 자신과 대등하게 경쟁할 상대를 원했다. 그를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혹은 질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은커녕 인지하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이제 아오미네가 부모님도 소꿉친구도 제쳐두고 가장 곁에 두고싶은 한 사람이 그를 버거워했다. 이런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턱이 없다. 자신의 어떤 점이 타카오를 힘들게 만드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걸 묻는 것 자체가 그를 자극할지도 몰랐다. 아오미네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애초에 행동해도 되는 것인지조차 모르는 채 타카오의 행동을 기다리기로 했다. 해도 괜찮은 것을 일러주고 어떤 점이 문제인지를 알아내어 가르쳐주고 이렇게 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이끌어주거나, 혹은 그만하자고 결정하기를 기다리기로. 타카오가 지적한 대로 그에게 전부 떠넘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아오미네는 자신이 보통사람보다 훨씬 쉽게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타카오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그 쓸데없이 눈치가 좋은 남자는 오히려 아오미네의 가장 사소한 제스처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반응하니 반대로 보통 사람보다 더 쉽게 아오미네에게 영향을 받는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아오미네는 임의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그가 해도 된다고 혹은 하라고 알려준 것만 해야지 이 상황은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야말로 겁쟁이의 행동방식이지만 그렇게 해서 타카오가 괜찮아지고 그래서 같이 있어준다면 그건 성공이다. 그게 바로 성공이다.
그래서 아오미네는 기다렸다.
“여, 시-인쨩!”
“타카오.”
“의대는 시험이 늦게 끝나네~아이구 얼굴이 반쪽이야!”
“그러는 너는 잘 지내는 것 같군.”
“응, 이제 알바 안하니까 살판났지.”
“성적은?”
“그쪽이 관리해준다고 해서 제가 못 받을 장학금을 받게 되고 그런 수준은 아니니 신경 꺼주시기 바랍니다….”
“흠.”
나름으로는 대화를 터나갈 가벼운 신변잡기랍시고 고른 주제였던 모양이다. 타카오의 반응을 본 미도리마는 캔단팥죽을 홀짝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애인은?”
“으음…. 헤어지진 않았는데. 시간을 가지는 중이라고나 할까?”
“시간.”
“응, 괜찮아질 때까지.”
“괜찮아지다니, 뭐가 말이냐.”
“…뭐가 됐든.”
그러자 에이스님이 못 마땅한 얼굴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못 마땅할 것이다, 이런 애매하고 두루뭉실한 미봉책이라니. 하지만 당사자들이 둘 다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뒤에 최후를 맞이하고 싶은 것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끝까지 노력해보려고. 한심한가?”
“남일이라고 함부로 말할 생각은 없다는 거다.”
“얼레? 신쨩 나 저번에 징징댔을 때에 비해 무진장 우호적인 태도인거 알아? 이게 또 무슨 심경의 변화람~? 혹시 그 사이 솔로천국에서 벗어나기라도 했어???”
“그 녀석은 확실히 무례한 축이다만, 애정은 진심이겠지.”
“…으응? 누구 말야?”
“네 애인 말이다.”
“흐음. 꼭 아는 사이인 것처럼 말하네?”
“…아오미네가 웬일로 내게 연락을 하더군. 그리고 모모이와 만났다. 설명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만.”
“음…그러니까아….”
이런 상황에서 미도리마 신타로의 한숨은 이쪽을 엄청난 지지리궁상모지리처럼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새로 배운다. 타카오는 계속 시치미를 떼어야 할지, 아니면 이미 늦었으니 배째라는 식으로 나가야 할지 재고 있었다. 캔을 천천히 흔들며 미도리마가 말을 이었다.
“말 해두지만 그 녀석은 수동적이기로는 어디 비교할 데가 없을 정도니 결국 선택은 네가 하게 될 거다.”
“오, 딱 맞아. 나 소름 돋았어. 신쨩 아예 이 길로 나가보지 그래?”
“닥쳐봐라. 미국에 건너가 있든, 연봉이 300만이든, 그 녀석은 그 녀석이지. 게으르고 제멋대로에 툭하면 응석부리려 드는 점은 한 군데도 변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틀렸나?”
“맞는 거 같습니다….”
“그럼 결국 네가 그 녀석에게 끌린 요소는 변함없다는 것 아닌가?”
“신쨩이 내 안목이 거북이 똥꼬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잘 알겠다…. 300만 달러로는 엄청 많은 걸 할 수 있잖아? 신쨩은 도련님이라 감이 잘 안 오나 본데 엄청난 거라고?”
“그 정도 액수가 널 초라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거다.”
“…신쨩 데레기?! 데레 그랜드 시즌이 와버린 거야?! 오춘기 대1기가 아니고 데레기야?!”
“닥쳐라.”
차갑고 단호한 명령에 타카오는 얌전히 조용해졌다. 가만히 있기는 지루하니까 발을 움직여 천천히 그네를 흔들며 기다린다. 하지만 미도리마는 더 이상 긴 말은 하지 않았다.
“그 300만짜리가 네게 목을 매고 있지.”
타카오는 받아칠 말도, 웃어넘길 기력도 발견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아오미네는 타카오와 동거하길 원했고, 타카오가 모르겠다고 하자 그 장밋빛 계획을 기약 없는 나중으로 미뤄버렸고, 자기 말대로 연락하지 않고 그저 순종적으로 기다렸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타카오는 천천히 발로 땅을 밀었다. 그네가 밀려났다가는 다시 앞으로 돌아온다. 고개를 삐뚜름하게 돌려 미도리마와 눈이 마주친 그가 하하, 마른 소리로 웃었다.
아오미네는 자기도 놀랄 정도로 자기 말을 잘 지켰다. 그가 먼저 타카오에게 연락한 것은 귀국 일정을 알리려는 딱 한 번뿐이었다. 이륙 5분 전까지도 ‘마중나올 거야?’라고 묻고싶어 전전긍긍한 주제에 얌전히 핸드폰을 끄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럴 의도가 없었더라도 징징대며 매달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라도 타카오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아오미네는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농구선수를 그만둘 수 없고 그렇다고 그와 헤어지기도 싫었다.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곤 조용히 기다리는 것뿐이다. 싱겁고, 불안하고 괴로운 방법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늘오지?마중갈게]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수속을 마치고 꺼내본 핸드폰에 라인이 와있었다. 타카오였다. 바로 보겠다 생각하니 들뜨는 기분과 함께 발걸음도 빨라진다. 요란한 안내 방송이 끊이질 않는다. 시카고 행 비행기가 곧 출발할 것이다. 천장이 높은 복도를 빠르게 지났다. 방송은 이제 미아를 찾고 있었다. 사람들을 이리저리 앞지르면서 아오미네는 힐끔 시계를 확인했다. 비행기는 늦지 않고 예정시간대로 도착했다. 타카오가 오래 기다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보폭을 넓게 유지한 채 성큼성큼 걷다보니 겨우 홀이 나왔다. 마음은 급한데 사람은 북적거리고, 이 속에서 타카오를 알아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아마 타카오가 먼저 이쪽을 발견하겠거니 생각하며 적당한 속도로 인파를 훑어보던 아오미네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느꼈다거나 하는 이유도 없이 그냥 그래야할 것 같은 기분이라 거기 따랐을 뿐이었는데, 자연스레 눈이 멈춘 곳에 바로 찾던 얼굴이 있었다. 주변에서 누굴 찾거나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 의식에서 희미하게 사라진다. 몸을 돌리는 사이 그도 아오미네를 알아보고 웃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몰려서 혼잡한데도 그게 잘 보인다. 신기한 일이었다. 대체 얼마나 집중했으면, 하고 스스로도 조금 우습다.
@yakdor
아오미네는 저절로 나와버리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타카오는 잠깐 망설였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흔들었다. 아오미네는 그 손에 반지가 있다는 걸, 정확히 왼손 약지에 반지가 있다는 걸, 바로 자기가 준비했던 반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오미네는 타카오가 이제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오미네는 타카오에게로 향했다. 아오미네는 타카오가 가지고 있을 반지를 떠올렸다. 아오미네는 또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도 생각했다. 아오미네는 급하게 놓아버린 가방이 다리로 쓰러지는 걸 무시하고 타카오를 포옹했다. 아오미네는 그가 큰 소리로 웃는 것을 들었다.
타카오는 이제 괜찮았다. 아오미네는 앞으로도 그를 좋아해도 괜찮았다.
Happy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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